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『 Essays in Love 』by Alain de Botton
 

 나는 사랑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의 눈을 상상하고 그 눈을 통하여 나 자신을 보게 되었다.
나는 누구인가? 가 아니라 나는 그녀에게 누구인가? 였다.
그 질문의 재귀적인 운동 속에서 나의 자아는 점점 배반과 비진정성에 물들게 될 수 밖에 없었다. 44p


종교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진리의 가치는 수백 년 전부터 의심을 받았다.
파스칼은 모든 기독교인이 신 없는 무시무시한 우주와 신이 존재하는 행복한, 그러나 훨씬 더 먼 우주로 불균등하게 나누어진 세계에서 선택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. 파스칼은 설사 신이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하더라도, 그 작은 가능성이 주는 기쁨이 더 큰 가능성이 주는 공포를 압도하기 때문에 신에 대한 우리의 신앙은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. 145p


어쩌면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아주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. 우리가 하는 말을 이해하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제대로 말을 할 수 없다는 것도.

161p


상대방에게 무엇 때문에 나를 사랑하게 되었느냐고 묻지 않는 것은 예의에 속한다. 개인적인 바람을 이야기하자면, 어떤 면 때문에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사실 때문에 사랑받는 것이다.

속성이나 특질을 넘어선 존재론적 지위 때문에 사랑을 받는 것이다. 사랑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은 부유함 속에서 사는 사람들처럼 애정/소유를 얻고 유지하는 수단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는 금기를 지켜야 한다. 사랑에서건 돈에서건 오직 빈곤만이 체제에 의문을 품게 한다. 그래서 아마 연인들은 위대한 혁명가가 되지 못하는 것 같다. 209p


예수가 그렇게 매력적인 인물이 된 것은 단지 르네상스 화가들이 그려놓은 울 듯한 눈과 창백한 안색 때문만이 아니다.

중요한 것은 예수가 착하고 완전히 의로운 존재이면서 동시에 배반당한 인물이라는 점이다. 내 사랑의 이야기와 마찬가지로, 신약성서가 비애감을 주는 것은 그것이 모든 덕을 갖추었지만 그럼에도 오해받은 존재의 슬픈 이야기이기 때문이다. 그 인물은 모든 사람에게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쳤지만, 사람들은 그 관대한 메시지를 그의 면전에 내던져버렸다. 264p

영혼은 낙타의 속도로 움직인다는 아랍 속담이 있다. 우리는 시간표가 꽉 짜인 현재의 무자비한 역학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나아가지만, 마음의 자리인 영혼은 기억의 무게에 힘겨워하며 노스탤지어에 젖어서 느릿느릿 뒤따라온다. 만일 모든 연애가 낙타에게 짐을 더 얹는 것이라면, 사랑의 짐의 의미에 따라서 영혼의 속도는 더 느려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.
267p
 



 

살짝 촌스러운 표지에 실망했지만

알랭 드 보통의 사랑에 관한 위트넘치는 분석은 감탄할만하다.

완전 맘에 드는 소설.
정말 강추 또 강추다.


originated from kiddie's cy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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      kiddie's  |  2006/02/14 03:45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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